개인과 기업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 share
‘이원복 교수 글그림, 신의 나라 인간 나라-철학의 세계편’, 학교 후배 장미일 로 부터 선물 받은 만화책 ㅋ. 지하철에서 보고 다닐 때, (만화책이라) 사람들의 시선을 꽤 많이 느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은 중고등학교 국민윤리나 고등학교 철학 시간에 이미 배운 내용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정말 공부를 안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입시위주의 대한민국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책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국어, 영어, 수학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 즉 철학이었다. 국영수를 왜 하는지도 모른 채, 그리고 나만의 목표의식도 없이, 그냥 채찍질 당해야 했었다.
지금 대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취업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대학 1 학년부터 4 년 동안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취업 스펙 공부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 대학생들을 그렇게 몰고 간 것은 우리 기업들이다.
안철수 교수의 인터뷰 를 보면…
그는 실력보다 출신이나 학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 대기업들이 외주업체들을 줄 세우는 비즈니스 관행과, 기업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기자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거짓 기사를 쓰게해서 대중들을 오도하는 행위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와 같은 환경은 정부가 해 줘야 할 Nudge 이지만, 그 전에 개인의 실력과 노력, 철학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이상주의는 현실에선 안 통하더라. 똑똑한 친구들은 법대가고 대기업을 가더라. 대기업에 밑보여 처절하게 말라 죽는 중소기업 여러 개 봤다. 개인에게도, 기업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플라톤 (BC439~347)
플라톤의 철학은 흔히 ‘동굴의 비유’로 소개된다. 이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국가 (Politeia)’ 에 나온다.
이 동굴에는 평생 동안 변만을 바라보게 묶인 죄수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옆 사람조차 볼 수 없고 오로지 동굴의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 뒤는 돌아볼 수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 그림자들은 죄수들의 등 뒤에 있는 불로 인해 만들어 지는 것으로, 이 그림자들을 실체라고 믿는 죄수들은 그림자 외의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의 실체는 전혀 엉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이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묶인 기둥에서 풀려나 그림자를 만드는 불꽃을 보게 된다면 (진실을 보게 된다면), 그의 눈은 부시고 아파서 차리리 가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불 뒤에는 좁은 통로로 된 동굴 입구가 있고, 동굴 바깥에는 나무와 강과 푸른 하늘이 있다. 이제 죄수는 좁은 통로를 통하여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다 (고통스러운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러나 햇빛이 너무 눈부셔 해는 보지 못하고, 우선 그림자를, 그리고 점차 나무와 산을 보게 되고 (점차 진실에 눈뜨게 되고), 마지막으로 해를 바라보게 된다 (각성하게 된다). 태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이 죄수는 드디어 자신이 허위와 착각에 빠져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깨달은’ 사람이 동굴에 돌아가 그가 겪은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닌 자로 조롱 받고 따돌림 당하게 되며, 그들을 밖으로 인도하려 한다면, 죄수들은 그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관습과 선입견의 노예가 된 인간들을 우둔함과 속임수에서 해방시키고, 진리의 빛과 참된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이 동굴의 비유는 많은 철학자들을 감동시켰고, 지금까지도 현실 세계에 그대로 적용되는 비유이기도 하다.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진실인가? 우리의 선택과 행동들은 진실인가? 언론들의 보도기사가 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