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선택이란 무엇인가? share
현재의 내가 있기 까지, 인생의 큰 전환점이 3번 정도 있었다.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선택과 기회의 중요성,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보려한다.
인생의 전환점 #1: 1981 년
국민학교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난 미술부로 활동했다.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나면, 몇 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미술 선생님이 개별 지도를 해 주시는 선택된 아이들만의 기회였다. 시골 국민학교에서는 그림을 꽤 잘 그리는 축에 속했던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 시절 어느날,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방문하셨다. 선생님과 한참 동안 대화가 이어졌고, 난 그날 이후 미술부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 오는 자전거 뒷 자리에 앉은 나는, 아버지 잠바 춤을 붙잡고 계속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그날 이후 미술에 대한 내 꿈은 접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아버지는 미술 같은 거는 광대들이나 하는 짓이고, 밥 벌어 먹기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냥 정규 공부만 잘 해주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농삿일을 거들어 주고, 숙제나 잘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게다가, 미술부 시절 난 매일 도화지 값 80 원이 필요했다. 그 당시, 우리는 가난했다. 잠깐 엿들은 선생님과 아버지의 대화였다.
인생의 전환점 #2: 1988 년
아버지는 농삿일에서 장삿일로 업종을 전환하셨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 조금 더 큰 도시로 이사하고, 전학도 하게 되었다. 도시의 중학교 과정은 시골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때는 3학년 과목을 배우고, 3학년 때는 문제집을 푸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중학교 2학년 교과과정은 없다. 그래서, 시골서 공부를 꽤 잘 한다고 소문났던 나는, 도시 중학교에서는 평균을 까먹는 학생이 되고 말았다.
난 당시 전자제품을 만지는 것을 너무 좋아했었고, 무엇이 들었길래 저런 물건들이 동작하는 지 궁금했다. 뜯어 봤다. 난 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가고 싶었다. 진학지도를 하시던 3학년 담임선생님은 대학에 가면 공대라는 것이 있고, 전자과라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셨다. 당시만 해도 내 부모님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지를 물어 본 적이 없었고, 내 적성을 생각해서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고, 지혜로운 충고를 해 주신적이 없었다. 내 지식 범위 내에서 내가 결정해야 했었는데, 어린 나는 공대 전자과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1년 동안 부리나케 공부했다.
[그림 유실] 바로 이 책들때문에 공고 전자과를 가려고 했었다. 반면 이 책들 덕분에 지금 전기/전자/반도체 산업에 머물고 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비평준화지역 (요즘 쓰지도 않는 구시대적 단어^^) 으로 연합고사로 고등학교를 배정 (선지원 후시험) 받았다. 당연히, 실패했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지역의 몇 개 공업고등학교에서는 아버지에게 전액 장학금을 내세운 낚시질을 해 왔다. 거의 몇 일간을 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던 나에게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공고갈래? 아니면, 한해 더 공부해서 인문계 고등학교 갈래?
난 고등학교를 재수했다.
인생의 전환점 #3: 2000 년
‘날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군대를 다녀와서 경영학과를 복학한 나의 고민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웹디자인과 웹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다. 경영과학류를 좋아했던 나에겐, 그리고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미술의 꿈을 접었던 나에겐 정말 괜찮은 (재미있는) 선택이었다. 4학년이 되었고, 웹 기획자와 같은 일 자리를 기웃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출신 성분 (학과)이 중요했다.
경영학을 더 공부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대학원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봤고, 덜컥 합격했다, 꼴찌로. 덕분에 장학금은 전혀 없었고, 돈을 전부 내고 입학해야 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간 일궈 놓으신 게 아까웠을 테고, 내가 세상의 경쟁에 휘말리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28살에 아버지한테 따귀를 맞고 (아마 내가 논리적으로 설득을 잘 못했던 것 같다), 겨우 돈을 얻어 대학원에 입학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틈틈이 알바를 했다 (물론, 부모님께 돈을 많이 타썼다).
기회와 선택이라는 것
인생의 전환점 #1에서는 내 인생에 대한 내 판단력이 부족할 때였다. 이 때는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 내가 내 몸이 부셔져도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과 기회를 주고 싶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좋은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빌게이츠 (아버지 변호사, 어머니 회계사), 래리페이지/세르게이브린 (아버지 물리학/수학 교수), 손정의 (아버지의 대단한 결단력과 교육열) 이 우뚝 서 있는 이유는 훌륭한 부모를 두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훌륭한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스티브잡스는 어떤가?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살았기 때문이고, 워즈니악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문화적인 요소이다. 어린 시절부터 알렉스의 부모가 교양 있는 방식으로 점잖게 설득하는 방법, 거절하는 방법, 격려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진료를 받는 경우처럼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예행연습을 시켰기 때문에 알렉스가 그런 기술을 습득했을 뿐이다.
교육의 기회나, 주변 환경 (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 이 부모와 아이가 노력해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기회라면, 선택할 수 없는 기회도 있다. 시대라는 것, 지금 부터 2000년 전에 태어난 사람과 2000 년 후에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는 다르다. 또, 전쟁 중에 태어나 살아남은 사람과 전(戰) 후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나 경쟁의 강도는 다르다.
인생의 전환점 #2,3에서는 순전히 내 고집과 선택이었다. 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웃라이어’란 책을 보면 기회와 선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캐나다 하키리그 톱 클래스 선수들의 생일이 대부분 1~6 월에 몰려 있는 이유, 빌게이츠, 빌조이, 스티브잡스와 같은 IT 거물들이 거의 1955 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이유, 스캐튼 압스의 대표변호사 조셉플롬이 성공한 이유 등을 통해서 말이다.
선택의 적중성
‘난 앞으로 이걸 할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 길을 선택해야 해.’ 우리는 미래를 내다 보면서, 지금의 내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거란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처한 상황에 맞추어 미래의 목표를 계속 적응시켜 나가기도 하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 보면, 그 때 그 선택의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정확한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과거의 이 선택은 50% 도움이 되었고, 그 다음 선택은 80% 도움이 되었고… 뭐 이런 식으로.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을 들어보면 리드대학에서 서예학을 도강했던 것이 맥킨토시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한다.
발 밑만 보고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멀리 있는 목표물을 보고 눈길을 어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물론, 뒤 돌아 보면 멀리 있는 목표물을 보고 간 사람의 발자국이 더 똑 바르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멀리 있는 목표 자체가 명확하지 않더라.
즉,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적중할 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내 인생의 전환점 #1,2,3 을 선택하면서, 지금의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다만, 지금 당장 당면한 단기목표를 하나씩, 최선을 다해서 달성해 나갈 뿐이다.
글을 다 쓰고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교육 대학에 진학하라고 하셨던 적이 있었다 - 난 고집이 센 아이였다. 난 부모님께 이렇게 키워 주시고, 공부시켜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다. 물론, 국민학교 2학년 때 미술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테지만, 겪어 보지 않아 사실 모르고, 난 지금의 내 삶과 내가 가진 미래에 대한 꿈(우주)의 크기에 만족할 뿐이다.
[그림 유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이유다. 적어도 당신은 가족은 책임질 수 있는 용기 (농삿일->장삿일) 를 가진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배운 것 없는 분들이지만, 성실이라는 가치를 물려 주셨다.
덧글
아주 먼 옛날에는 세상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아버지들은 항상 어린 자녀들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하고, 언제 추수를 해야 하는지…
요즘은 세상이 참 빨리 변한다. 몇 일만 소홀히 해도 400 개가 쌓이는 RSS 리더, 30 개의 이메일, 내가 팔로우하는 50 명 남짓 트위터리안들의 500 개의 트윗, 읽어야 할 책들… 물론 대부분은 내가 제목만 보고 무시해 버릴 스팸이 대부분이지만… 정보가 넘쳐 난다. 하지만, ‘졸고 있으면 죽는다.’
부모의 지적 수준은 어린 자녀보다 높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문화와 생각과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부모가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그들의 인생이다. 세상을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부모이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것이 부모는 아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하루에 80원 정도는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부모가 해줘야 할 일이다.
라루는 중산층 (中産層(x), 重産層(o)) 부모의 스타일을 ‘집중양육 (concentrated cultivation)’ 이라고 불렀다. 이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재능, 의견, 기술을 길러주고 비용을 대는 것을 말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가난한 부모는 ‘자연적인 성장을 통한 성취 (accomplishment of natural growth)’ 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녀를 돌봐야 할 책임은 지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성장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계발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전 블로그에서 옮겨온 댓글
- 버사틸 2010/02/08 15:42 흠….저희 부모님도 장래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해주시지 않았고.. 제 인생을 너무 어린나이에 제가 결정하게 되었죠. 그래도 공고를 간건 내인생에서 잘한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아니라 다른 선택들도.. 과연 다른길을 택했으면 더 좋아졌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을거같네요. 어차피 가지 않은 길은 가지않은 길일뿐이니까요.
- 추장 2010/02/08 16:18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문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문과나오면 굶는다는 부모님 말씀에 바로 굴복하고 ‘이과’를 택해 후회했던 저와는 다르시군요. 전 고집이 너무 약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음에도 말이죠. 그 굴복은 대학 진학 시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기계, 전자, 건축, 화공. 이 네가지 학과 중 선택을 하렴. 다시 말하지만 인문계는 굶는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 간신히 제 뜻을 제 마음 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목표에 수정을 가해야 할 만큼 늦은 시기였습니다.